‘전설의 리틀 농구단’ 일본 라이선스 공연, ‘한국 뮤지컬 새 역사’ 썼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의 일본 라이선스 공연. 지역 문예회관에서 개발한 작품이 민간에서 대중화된 이후 해외 라이선스 공연까지 성사된 첫 사례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c)FAB·전설의 리틀 농구단 제작위원회
한국 창작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의 일본 라이선스 공연이 지난 15일 도쿄 소게츠홀에서 막을 올렸다. 박해림 극작, 황예슬 작곡의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왕따를 당하는 소년 수현이 어느 날 유령들 때문에 폐지 위기의 구청 농구단에 들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일본의 공연·드라마·영화 제작사 ㈜FAB가 선보인 일본 버전은 테츠하루(TETSUHARU)가 연출 및 안무를 맡았으며 하시모토 쇼헤이, 우메츠 미즈키 등 남자배우 6명이 출연했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 일본 라이선스 공연의 프로듀서 후쿠자와 고스케(왼쪽)와 연출가 테츠하루(TETSUHARU).
‘전설의 리틀 농구단’ 일본 버전은 대체로 한국 버전을 충실히 따르는 편이지만 달라진 점도 보였다. 우선 캐릭터 사이의 관계를 보다 섬세하게 보여주는 한편 안무를 한층 강화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차이는 일본 버전의 경우 배경에 공연 중간중간 영상과 함께 캐릭터들을 만화로 표현한 것이다. 연출가 테츠하루는 “한국 원작을 존중하되 일본 버전만의 매력을 살리고 싶었다. FAB의 후쿠자와 고스케 프로듀서와 상의한 끝에 만화를 넣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박해림 작가와 황예슬 작곡가는 “FAB에서 작품을 정성스럽게 만든 것이 느껴져 만족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의 일본 라이선스 공연 굿즈.
제작사 FAB는 일본의 대형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 회사 ㈜폴리곤 매직에서 8년간 공연과 영상 제작을 담당했던 부서가 2022년 독립한 회사다. 공연과 관련해서는 ‘만화 왕국’ 일본 특유의 2.5차원 뮤지컬을 주로 만들어 왔다. 2.5차원 뮤지컬은 2차원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3차원의 뮤지컬로 만들되 배우가 원작 캐릭터를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FAB가 2.5차원이 아닌 본격적인 의미의 뮤지컬로는 사실상 처음 도전하는 작품이었다.
FAB의 대표인 후쿠자와 프로듀서는 “팬데믹 시기이던 2021년 ‘전설의 리틀 농구단’을 소개받았다. 작품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이야기가 관객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끌렸다”면서 “또 2.5차원 뮤지컬에서 젊고 재능있는 남자 배우들과 많이 작업했는데, 이들과 이들의 팬이 본격적인 뮤지컬과 연극을 접하는 즐거움을 새롭게 느끼기를 바랐다”며 작품 선택 이유를 밝혔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 일본 버전은 도쿄 소게츠홀(526석)에서 15~25일 16회, 오사카 마츠시타IMP홀(857석)에서 3월 2~3일 4회가 예정돼 있다. 개막 전에 이미 좌석의 90% 이상이 팔렸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출연진이 대부분 2.5차원 뮤지컬을 통해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데다 제작사 FAB가 이례적으로 지난해 7월에 프리뷰 공연을 2회 가질 만큼 홍보에 힘쓴 덕분이다.
실제로 개막 첫날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되어 빈 좌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공연 시작 시각보다 적어도 1시간 전부터 극장 앞에 긴 줄이 만들어졌는데, 굿즈(기념 상품)를 사기 위해서였다. 인기 있는 배우의 극 중 캐릭터를 아크릴로 만든 모형은 공연 전에 매진되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 만난 관객들은 대부분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 때문에 오긴 했지만, 평소 한국 뮤지컬에 관심이 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이번 일본 라이선스 공연을 통해 한국 공연예술계에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바로 지역 문예회관에서 개발한 작품이 민간에서 대중화된 이후 해외 라이선스 공연까지 성사된 첫 사례라는 기록을 남긴 것이다.
이 작품의 역사는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열린 재학생들의 공연에서 시작됐다. 그해 말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정식 초연된 이후 이듬해 중국 베세토연극제 공식 초청 공연, 2018년 대학로 입성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꾸준히 완성도를 높였지만 공공극장이 주도하다 보니 대중화가 쉽지 않았다. 그러자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은 민간 제작사인 아이엠컬처에 이 작품의 공연권을 임대해 수익금의 일부를 로열티로 받는 계약을 맺었다. 아이엠컬처는 이 작품을 다시 보완해 서울 공연은 물론 지역에서 자주 초청받는 레퍼토리로 만든 데 이어 일본 라이선스 공연까지 성사시켰다.
비영리 극장 또는 단체가 개발한 작품을 민간 제작사에서 보완해 대중화한 뒤 수익금의 일부를 로열티로 제공하는 ‘인핸스먼트 계약(enhancement deals)’은 영국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는 자주 이뤄진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렌트’ ‘스프링 어웨이크닝’ ‘넥스트 투 노멀’ ‘해밀턴’ 등의 히트작들이 바로 인핸스먼트 계약으로 상업화에 성공한 사례다. 이제는 공공극장이 아예 작품 개발의 초기 단계부터 민간 제작사를 참여시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례를 찾기가 매우 드물다. 특히 해외 라이선스 공연까지 이뤄낸 것은 ‘전설의 리틀 농구단’이 처음이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의 일본 라이선스 공연. 지역 문예회관에서 개발한 작품이 민간에서 대중화된 이후 해외 라이선스 공연까지 성사된 첫 사례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c)FAB·전설의 리틀 농구단 제작위원회
정인석 아이엠컬처 대표는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공공극장의 창·제작 의지와 민간 프로덕션의 숙련된 노하우가 만나면 큰 시너지를 낸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면서 “앞으로 한국 뮤지컬계에서 ‘전설의 리틀 농구단’ 같은 민관 협력이 더욱 활발하게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도쿄=장지영 선임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