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C-삼성 경기 도중 심판진이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나와 충격을 안기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 NC-삼성 경기 도중 심판진이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나와 충격을 안기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스포티비뉴스=윤욱재 기자] “우리가 안 깨지려면…”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두 귀로 듣고도 믿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팬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의 경기가 열린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NC가 1-0으로 앞선 3회말 삼성의 공격이 진행됐고 2사 1루 상황에 이재현이 타석을 들어섰다. 마운드에는 NC 선발투수 이재학이 있었다. 이재학이 볼카운트 1S에서 2구째 던진 136km 직구는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한 것으로 보였으나 볼이 선언됐다. 그 사이 1루주자 김지찬이 2루 도루에 성공하면서 2사 2루로 바뀌었다. 경기는 계속 진행됐다. 이재학은 3구 볼, 4구 볼을 던진데 이어 5구째 120km 체인지업을 던져 스트라이크를 꽂았다. 풀카운트가 채워진 상황.
그런데 강인권 NC 감독이 벤치에서 나와 문승훈 구심을 찾았다. 2구째 볼로 선언된 공이 스트라이크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NC 덕아웃에는 KBO가 지급한 태블릿 PC가 있었는데 이 공이 볼이 아닌 스트라이크로 표시됐기 때문에 강인권 감독은 이를 근거로 항의한 것이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재학이 3개의 공을 더 던진 후에야 항의를 했기 때문에 “어필 시효가 지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NC는 태블릿 PC에 결과가 반영되는데 시간차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KBO는 올해부터 자동 투구판정 시스템(ABS)을 전격 도입했다. 아직 메이저리그도 시행하지 않은 제도인데 KBO가 한 발 앞서 나갔다. 심판의 볼-스트라이크 판정이 ABS의 트래킹 결과로 대체된 것이다. 따라서 심판은 이어폰을 낀 상태로 결과를 듣고 ‘최종 선언’을 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심판 4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때만 해도 4심 합의를 하는 줄 알았지 ‘작당 모의’를 하는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심판들의 대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는 고스란히 방송을 통해 전파를 탔다.
이날 1루심을 맡은 이민호 심판팀장이 “안 들렸으면 안 들렸다고 사인을 주고 해야 되는데 그냥 넘어가버린 거잖아”라고 말하자 문승훈 구심은 “지나간 거는 지나간 걸로 해야지”라고 말했다. 이 대화만 봐도 구심이 순간 ABS의 콜을 잘못 들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다음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민호 심판팀장은 “음성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들으세요. 아셨죠?”라면서 “이거는 우리가 빠져나가려면 그것 밖에 없는 거예요. 음성은 볼이야. 알았죠? 우리가 안 깨지려면 일단 그렇게 하셔야 돼요”라고 심판들을 종용한 것이다.
심판진이 ABS의 콜을 잘못 들었다고 인정하면 비난이 쇄도할 것을 예상해 시스템의 오류로 이를 무마하려는 시도였다.
무엇보다 심판위원의 말에서 “우리가 안 깨지려면”이라는 말을 한 것 자체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다. 누가 봐도 심판위원의 역할은 공정한 판정을 내리는 것인데 그보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 강인권 NC 감독 ⓒ곽혜미 기자
▲ 강인권 NC 감독 ⓒ곽혜미 기자
▲ 이재학 ⓒ곽혜미 기자
▲ 이재학 ⓒ곽혜미 기자
그러자 문승훈 구심이 “지직거리고 볼 같았다(라고 하겠다)”라고 했지만 이민호 심판팀장은 단호하게 “같았다가 아니라 볼이라고 나왔다고 그렇게 하시라고. 우리가 안 깨지려면”이라고 다시 한번 이야기를 했다. KBO 리그 역사를 통틀어 심판들의 이런 작당 모의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이민호 심판팀장은 심판들끼리 합의(?)를 마치고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관중들에게 “투구한 공이 음성에 전달될 때는 볼로 전달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ABS 모니터를 확인한 결과 스트라이크로 판정이 되었습니다. 어필 시효가 지난 걸로 해서 카운트대로 진행하겠습니다”라고 설명했다. KBO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당 심판들로부터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겠다는 입장이다.
혹자는 겨우 스트라이크-볼 판정 하나에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공 하나에 울고 웃는 야구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다. 만약 이재학이 던진 공이 정상대로 스트라이크로 선언이 됐다면 어땠을까. 투수는 볼카운트에 따라 볼배합이 달라질 수 있고 타자 또한 투수에 대응하는 방법이 조금씩 바뀔 수 있다. 때문에 결과 자체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크다. 결국 이재현이 볼넷으로 출루했지만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볼 하나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투수의 입장에서는 만약 스트라이크가 볼로 선언된다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이는 투구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재학은 마운드에서 흔들렸고 삼성은 2사 1,2루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구자욱이 우전 적시 2루타를 터뜨리면서 팀에 1-1 동점을 안기자 데이비드 맥키넌도 우전 적시타를 날려 삼성이 3-1 역전을 성공할 수 있었다. NC가 4회초 김성욱의 좌월 솔로홈런에 힘입어 1점을 따라갔지만 이미 기세는 삼성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4회말 이성규가 우중월 솔로홈런을 터뜨린데 이어 김현준의 좌전 안타, 그리고 김재상의 좌월 2점홈런이 터지면서 삼성이 6-2로 달아나는데 성공했다.
삼성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6회말 이성규의 좌월 솔로홈런, 7회말 맥키넌의 중월 2점홈런이 터지면서 9-2로 달아나며 쐐기를 박았고 NC가 8회초 천재환의 좌월 솔로홈런, 오영수의 중견수 희생플라이, 김한별의 중전 적시타로 3점을 추가했지만 승부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삼성은 8회말 김재상의 좌익수 희생플라이, 김헌곤의 좌중간 적시 2루타, 김호진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역시 3점을 추가하면서 NC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었다. 결국 삼성은 12-5로 대승을 거두고 스윕패를 모면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잘못된 볼 판정 하나 때문에 경기 결과가 완전히 뒤바뀐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승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제대로 판정만 이뤄졌다면 경기는 더욱 박진감이 넘쳤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공정성’이다. 공정성이 무너지면 스포츠도 존재할 수 없다. KBO가 ABS를 도입한 이유도 간단 명료하다. “ABS의 도입은 개선이 요구됐던 판정의 공정성 강화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라는 것이다. 물론 기계로 이를 보완하려 해도 사람의 실수는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당장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작당 모의’를 한 것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래서야 팬들이 리그를 신뢰할 수 있을까.
▲ KBO는 올 시즌부터 ABS 제도를 공식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곽혜미 기자
▲ KBO는 올 시즌부터 ABS 제도를 공식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곽혜미 기자
▲ 삼성-NC 경기 도중 심판진이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나와 충격을 안기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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