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진도항)에서 추모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한달 앞둔 지난달 16일, 서울시의회 앞 도로 절반은 노란색, 절반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제주에서 진도 팽목항을 거쳐 서울까지 21일을 걸어 도착한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곁을 지킨 건 이태원 참사 피해자 유가족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 참사 이후 스스로 재난 참사 전문가이자 활동가가 된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이 수없이 되뇌었던 말이다. 이 말을 딛고 법과 제도는 수차례 바뀌었다. 재난 대응 체계를 정비하는 법안 발의 건수가 확연히 늘었고,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체계와 구조기관 사이의 소통 시스템 등을 마련했다. 그리고 8년 뒤인 2022년 서울 이태원에서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로 변화한 안전 체계와, 그럼에도 놀랍도록 유사한 참사가 반복된 배경을 짚어본다.
■ 세월호 이후, 봇물 터진 법 개정
‘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한국 사회 재난 대응과 관리 체계의 기초가 되는 법이다. 18∼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이 법의 개정안을 살펴보면, 재난안전법은 18대 국회(2008∼2012년)에서 26건의 개정안이 발의된 데 비해 19대 국회(2012∼2016년)에선 77건으로 대폭 늘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직후 발의된 법안 29건을 종합해 2014년 12월9일 통과된 재난안전법 개정안은 국가 재난 시스템을 전면 재설계하는 내용이었다.
새롭게 설계된 개정안은 재난 예방과 대응부터 사후 관리까지 총괄 책임을 지는 ①컨트롤타워의 존재를 명확히 했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던 박근혜 정부는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국민안전처’를 신설했다. 국민안전처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임을 천명하면서, 그 역할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와 행정안전부로 넘기고 2017년 사라졌다.
재난을 직접적으로 수습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국무총리급으로 격상했다. 긴급구조 활동을 할 땐 시·군·구 긴급구조통제단장인 소방서장의 지휘를 따르도록 명시해 ②현장의 혼선을 줄일 체계를 짰다. 경찰·소방·해경이 신속하게 소통하기 위한 재난안전통신망을 ‘세계 최초’로 구축하기도 했다.
정부엔 재난 상황을 수습한 뒤 발생 원인과 대응 과정에 대한 조사·분석·평가를 담은 재난 원인 조사 결과, 중대한 재난 수습 상황 등을 기록한 재난백서를 국회에 제출해야 할 의무도 생겼다. ③조사와 평가를 통해 참사의 교훈을 기록해야 한다는 취지다.
■ 반복된 참사의 풍경
하지만 변화된 체계와 제도는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제도는 바뀌었으나 사람, 즉 실제 행동하고 책임져야 할 재난 대응 기관과 책임자의 태도가 변하지 않은 탓이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는 그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2014년 4월16일, 그리고 이후 10년 동안 피해자 가족이 겪은 날들과 이태원 참사의 사정은 대부분 겹쳤다.
①컨트롤타워는 늦게 작동했다.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은 참사 발생 30분이 지나서야 상황을 알게 됐고, 상황실장과 행정안전부 장관은 1시간이 넘어서 보고를 받았다. 이로 인해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참사 다음날 새벽 2시30분 가동됐다.
긴급구조에 있어 ②현장 혼선은 여실했다.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다 보니 현장 통제가 이뤄지지 않아 새로 투입된 긴급구조 인력이 현장에 진입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1조5천억원을 들여 도입한 재난안전통신망은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다. 소방·의료 기관은 국가 통신망이 아닌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통해 재난 상황을 공유했고, 해당 대화방에 경찰은 없었다. 그 결과 소방과 경찰, 의료진이 뒤엉켜 접근 통로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혼란이 빚어졌다. 구급차와 병원 배정도 원활하지 못했다.
③조사와 평가는 없었다. 행정안전부는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를 들어 이태원 참사의 재난 원인 조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참사의 원인과 배경을 근본적으로 밝히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는 대통령이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만들지 못했다.
■ ‘책임을 다하는’ 변화는 아직
4·16연대는 세월호의 교훈을 단순히 제도나 체계 등 형식적인 개선 정도로만 받아들인 것을 한계로 분석한다. 이 단체는 참사 10주기를 맞아 발간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4·16세월호참사 종합보고서 분석 티에프(TF) 자료집’에서 “이전에 지휘·조정체계가 없었다거나 정보전달체계가 부실했기 때문에 참사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 각급 구조본부가 가동할 법적 근거가 있고, 해경 지휘부와 현장출동세력이 기본 매뉴얼과 법령에 따라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었는데도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않은 원인에 대한 (사참위의) 분석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핵심은 제도나 체계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책임이 실질적으로 이행되는’ 사회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은 이런 이유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2020년 11월13일 발의된 생명안전기본법은 ‘국가 등은 모든 사람의 안전권을 보장할 책무를 지닌다’는 문구와 함께 이를 위한 안전 계획 수립, 사고 조사 등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이태호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은 “시민들은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고, 안전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는 점을 법에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법은 21대 국회에서 소관 상임위원회(행정안전위원회) 논의조차 제대로 못 해보고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가 유력하다.
22대 총선을 이틀 앞둔 지난 8일 세월호와 이태원 두 참사 피해자 가족은 노란색과 보라색 점퍼를 입고 국회 앞에 또다시 나란히 섰다. “22대 국회는 생명안전 국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 다하지 못한 변화가 만든 비극으로 이어진 두 참사 피해자 가족은 단순하지만 절박한 문장이 적힌 펼침막을 함께 들었다.
김가윤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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