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로 불리며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중국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가 각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등 통계를 분석한 뒤 내놓은 결론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2021년)보다 감소한 20%(명목 GDP 기준)로 집계됐다. 중국 비중 축소는 1994년 중국이 새 환율 제도를 도입하면서 생산품의 달러화 환산 가치가 하락한 이후 처음이다. 중국 경제 성장동력이 무뎌지며 ‘피크차이나’가 현실화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이 ‘리오프닝’을 단행하며 세계 경제의 구원 투수가 될 것이라는 희망도 사라졌다.
2024년에도 중국이 딱히 세계 경제 주축으로 올라서기는 힘들어 보인다. 시진핑 정부의 근간이 됐던 부동산 경기는 싸늘하게 식었고, 지방정부 재정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마땅한 부양책도 없는 상황에서 기업 규제는 더욱 심해져 중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성장·안정 다 잡겠다면서 부양책 없다?
부동산·지방부채 ‘노답’…美 갈등 여전
‘온중구진(穩中求進)·이진촉온(以進促穩)·선립후파(先立後破)’.
‘안정 속에서 성장을 추구하고, 성장으로 안정을 촉진하며, 먼저 세운 후 낡은 것을 깨뜨린다’는 의미다. 경제성장률 목표를 정하고 국정 운영 방향을 정하는 중국 중앙경제공작회의가 지난 12월 13일 2024년 정책 방향의 최우선 목표로 내세운 용어다.
안정 속 성장을 의미하는 ‘온중구진’은 2021년과 2022년 경제공작회의에서도 등장했다. ‘이진촉온’과 ‘선립후파’는 이번에 처음 나왔다. ‘이진촉온’은 중국 정부가 성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는 점을 보여준다. 세우고 나중에 돌파한다는 ‘선립후파’ 역시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았던 공동부유와 부동산 정책의 속도가 조절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마디로 ‘성장’에 방점을 뒀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성장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년 만에 처음으로 쪼그라들었다. 중국은 1978년 12월 경제 개혁·개방을 천명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왔다. 전 세계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1990년 2%에서 2021년 18.4%로 급등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갈등이 불거지고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으며 내림세를 걷기 시작했다. 올 들어 감소세가 더 가팔라져 중국 비중은 17%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 비중이 2년간 1.4%포인트 줄어드는 것은 1960년대 이후 처음이다.
중앙경제공작회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경제선전과 여론지도를 강화하라”며 “중국 경제의 광명론을 노래하라”고 지시했다. 민영 경제가 활력을 잃으면서 성장의 정점을 지났다는 외부의 ‘피크차이나’ 논란, 중국 내부에서 제기되는 비관론에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중앙경제공작회의가 2024년 정책 방향의 최우선 목표로 ‘이진촉온’을 꺼내들었다. ‘이진촉온’은 중국 정부가 성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세계 경제 속 중국 비중 처음 축소
무디스 “中 신용등급 부정적으로 하향”
중국의 ‘결기’와는 달리, 현실은 냉혹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광둥성 둥관시다. 이곳은 한때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다. 그러나 GDP 1조위안을 넘어섰던 둥관시는 해외 주문량이 곤두박질치며 ‘빙하기’를 겪는 중이다. 둥관시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1~9월 둥관시 GDP는 전년보다 1.5% 성장에 그친 8119억위안으로 집계됐다. 1980년대부터 노동집약적 의류·전자 산업이 발달했고 세계 유명 브랜드 제품이 ‘메이드 인 차이나’ 마크를 달고 생산됐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 침체, 국내외 수요 약세, 미국 금리 인상, 미·중 무역 전쟁으로 둥관의 전성기는 일단락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기업들의 ‘엑소더스’도 이어진다. 과거 미국 애플, 스페인 패션 업체 망고 등 글로벌 기업이 주축이 돼 중국 공장 이전에 나섰다. 요즘은 수출 비중이 높은 중국 본토 기업까지 탈중국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의 성장 둔화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GDP 30%를 차지하는 부동산 부문은 장기 침체에 빠져들었다. 중국부동산정보회사에 따르면, 지난 11월 중국 100대 부동산 개발 업체 매출은 547억달러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지난해 11월보다 30% 감소했다.
중국 경제가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2월 5일 중국의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의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했다.
무디스는 중국이 지방정부와 국영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재정 부양책을 사용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하방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장기적인 위협 요소도 남았다. 저출산이다. 올해 신생아가 지난해보다 10% 이상 줄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듯 보인다. 지난해 1000만명에 이어 올해 900만명 선마저 위태롭다. 비혼(非婚)도 증가세라 지난해 초혼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1100만명 선이 깨졌다. 결혼할 여성이 줄고, 여성이 결혼도 잘 하지 않으며, 결혼해도 출산을 기피해 신생아가 줄어든다. 현재 세계 노동 가능 인구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9%다. 이 비율이 향후 35년에 걸쳐 10%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풍부한 노동력과 거대한 소비 시장이라는 인구 프리미엄은 이제 저물어가는 중이다.
중국 정부는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도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호소 외에는 별다른 정책이 없었다. BNP파리바의 재클린 롱 수석 중국 이코노미스트는 “창의적인 것은 없었다”며 “투자자들은 훨씬 더 강력한 친성장 정책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자 실망을 반영한 듯,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주식은 회의가 열린 직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부양 정책 없는 회의 여파는 특히 개발 업체인 롱포그룹홀딩스, 중국 해외 발전의 주가를 최저치로 끌어내렸다. 중국은 지난해 연간 성장(GDP) 목표치인 5.5%에 못 미치는 3%를 기록했다. 2023년 목표치로 5% 안팎을 제시했는데 달성 가능성이 높지 않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9호 (2023.12.20~2023.12.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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