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1년 말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 비대위원으로 영입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불편한 관계였고, 이후 김 전 위원장의 더불어민주당행은 충격적이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최근 펴낸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 1·2’(중앙북스)를 통해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 컨벤션홀에서 열린 ‘박근혜 회고록 : 어둠을 지나 미래로’ 출간 기념 북콘서트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2011년 8월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패로 물러난 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12월 ‘디도스 사건’까지 터져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무너지자 비대위원장으로 구원 등판한다. 이어 김종인·이준석 등을 비대위원으로 인선하고, 당명(한나라당→새누리당)과 당색(파란색→빨간색)도 바꾸는 등 2012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한 당 혁신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의 노선 변화를 상징하는 공약이었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통령은 책에서 “2012년 대선 때 최대 화두였던 경제민주화는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에 참여했던 김종인 전 의원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며 “김 전 의원은 1987년 개헌 때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든 분이다. 그는 새누리당의 정강·정책을 새로 고칠 때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많은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17대 국회 새천년민주당 소속 비례대표였던 김 전 의원이 만나고 싶다는 요청을 해 몇 번 만나 얘기를 나눈 인연이 있다고 했다. 이후 새누리당 비대위를 꾸릴 때 당에 꼭 필요한 분으로 판단, 도와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 컨벤션홀에서 열린 ‘박근혜 회고록 : 어둠을 지나 미래로’ 출간 기념 북콘서트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아름답게 이어지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분(김종인)은 자기 주관이 너무나 확고해 자신과 다른 의견은 좀처럼 수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며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이재오 의원 공천 방침에 항의한다며 갑자기 비대위원을 그만두겠다고 해 나를 당황하게 한 적도 있다”고 김 전 위원장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특히, 당시 둘은 ‘경제민주화‘ 공약의 핵심 중 하나였던 재벌기업의 순환출자 이슈를 두고 국민 경제 혼란을 우려해 ‘신규 순환 출자만 금지’(박 전 대통령)와 ‘기존 순환 출자까지 전부 해소’(김 전 위원장) 입장으로 갈리면서 갈등이 깊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마치 재계의 로비를 받고 입장을 바꾼 것처럼 비난했다. 어처구니 없는 얘기였다”며 “나는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기업을 지나치게 규제 일변도로 묶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확고하게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 컨벤션홀에서 열린 ‘박근혜 회고록 : 어둠을 지나 미래로’ 출간 기념 북콘서트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그러면서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도 김 전 의원이 “박근혜정부에 경제민주화가 안 보인다”고 계속 비난한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대선 때 약속한 주요 경제민주화 입법을 대부분 완료했다”며 신규 순환 출자 금지, 하도급법 개정, 일감 몰아주기 과징금 부과, 금산 분리 강화, 공정위 전속 고발권 보완 등을 열거한 뒤, “이런 법안들은 과거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도 처리하지 못했던 성과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시 민주당이 박근혜정부를 엄청 욕했지만 자신들이 절대 과반 의석을 갖고 있던 문재인정부에선 기존 순환 출자까지 전부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나? 공정위 전속 고발권 완전 폐지는? 자신들도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거 했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으니 안 한 것”이라며 박근혜정부 경제민주화를 폄훼한 민주당을 비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 컨벤션홀에서 열린 ‘박근혜 회고록 : 어둠을 지나 미래로’ 출간 기념 북콘서트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박 전 대통령은 그렇게 멀어진 김 전 위원장이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노선이 완전히 다른 정당 사이에서 당적을 옮겨 다니는 것은 나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탄핵으로 물러나 수감생활을 할 때인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김 전 위원장이 다시 국민의힘(새누리당 후신)으로 건너와 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맡았다는 뉴스를 들었다고. 박 전 대통령은 “나는 내가 속한 정당이 잘못되더라도 그 안에서 최대한 고쳐보려고 노력한 사람”이라며, “나하고 안 맞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당에서 활동할 바에야 차라리 정치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김 전 의원은 나와 참 많이 다른 분”이라고 썼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2011년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19대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이야기로 시작해 2022년 3월 대구 달성 사저로 내려오기까지의 약 10년에 걸친 이야기가 펼쳐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집필하기로 마음먹은 까닭에 대해 “내가 유일하게 헌정사에 탄핵으로 퇴임한 대통령이지만, 재임 시절의 이야기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옳고 그름의 판단을 넘어 있는 그대로 들려드리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의 의무감이 그 주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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