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유승민 겨냥한 '배신의 정치'는 "국민에 대한 배신 의미"

박근혜, 유승민 겨냥한 ‘배신의 정치’는 “국민에 대한 배신 의미”

이른바 ‘태극기 부대’를 비롯해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유승민 전 의원은 ‘배신자’로 단단히 찍혀 있다. 박 전 대통령 덕분에 국회의원이 되고 한때 친박근혜계 핵심이었던 유승민이 박 전 대통령을 배반하고 박근혜정부의 발목까지 잡았다는 것이다. 특히, 박근혜정부 임기 중반인 2015년 5월 말, 집권여당(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과 함께 ‘대통령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변경권을 갖도록 한다’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을 야당(새정치민주연합)과 한밤 중 합의처리하자 박 대통령이 격노한 게 컸다. 당시 박 대통령은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해 위헌 소지가 크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어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라며 “정치는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유승민을 겨냥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이라며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통령은 최근 펴낸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 1·2’(중앙북스)를 통해 “내가 말한 배신은 대통령(나)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배신을 의미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국민에게 ‘뽑아주시면 이러저러한 일을 하겠다’고 약속해서 당선됐으면 그 약속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 여당 원내지도부가 정부의 공약 이행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국민에 대한 배신이 된다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

 

이 발언 이후 결국 유승민은 더 버티지 못한 채 2주 만에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박 전 대통령은 유 전 의원이 원내대표 사퇴회견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 보탰다. “갑자기 헌법 얘기를 꺼낸 게 참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헌법 정신으로 따지자면 자신(유승민)이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이야말로 헌법의 삼권분립 원칙을 침해하는 반헌법적 내용 아니었나”라고 꼬집은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 컨벤션홀에서 열린 ‘박근혜 회고록 : 어둠을 지나 미래로’ 출간 기념 북콘서트에서 박수치고 있다. 뉴시스

아름답게 시작했던 둘의 오랜 인연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박 전 대통령 회고록에 따르면, 그가 한나라당 대표로 2004년 총선을 치를 때 공천을 직접 챙겼던 사람이 유승민이다. 강재섭 전 대표가 전화를 해서 “이회창 전 총재가 자신이 아끼던 유승민 전 여의도연구소장의 비례대표 공천을 부탁한다”고 전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이 전 총재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유승민의 비례대표 순번을 안정권 이내로 조정했다. 이후 유승민은 당시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대표 요청에 따라 이듬해 10월 대구 동을 재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2007년 박근혜·이명박 후보가 치열하게 맞붙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랬던 유 의원이 언제부턴가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며 “나는 이명박정부 시절에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해 전문가·학자들과 정책을 토론하고 공약을 수립하는 모임을 운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유 의원이 모임에 안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엔 유 의원이 바쁜 일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 이후에 계속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정확히 그 이유를 모른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 컨벤션홀에서 열린 ‘박근혜 회고록 : 어둠을 지나 미래로’ 출간 기념 북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자신과 유승민의 관계가 예전 같이 않다는 말이 나돌아 신경쓰이던 2012년 어느날 국회 지하 통로를 모처럼 함께 걸으며 얘기를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이상하게 대화가 계속 겉돌았다고 회고했다. “나와 유 의원 사이를 어떤 벽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었다. 꽤 긴 거리를 걸었지만 헤어지고 나서 씁쓸했던 기분이 지금도 기억난다.”

 

박 전 대통령은 “아마 유 의원은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 노선과 내가 걷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짐작했다.

 

그는 대통령과 가장 호흡이 잘 맞아야 할 여당의 원내대표가 자기 색깔이 강할 경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만큼 유승민의 원내대표 당선 소식에 걱정이 들었다고 한다. ‘앞으로 당·청 관계가 쉽지 않겠구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유 원내대표가 2015년 4월8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창조경제는 성장의 해법이 아니다”는 식으로 박근혜정부의 핵심 공약과 정책을 깎아 내리면서다. 박 전 대통령은 “유 의원이 (창조경제는 제대로 된 성장 해법이 아니라면서도) 야당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환영한다고 하니 나는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

 

박 전 대통령은 둘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파탄이 난 건 자신의 숙원사업이었던 공무원연금 개혁때라고 했다. 유승민이 공무원연금법 개정 합의의 부대 조건으로 야당과 국회법도 함께 개정하기로 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유승민이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그런 합의를 해줬는지 몹시 화가 났다고 했다. “당시 정부는 국회선진화법에 가로막혀서 의미 있는 법안 처리를 하나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대통령령의 재량 범위 내에서 조금씩 고쳐가면서 근근이 버텨 나가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국회법을 고쳐버리면 국회가 대통령과 정부의 손발을 꽁꽁 묶겠다는 얘기 아닌가.”

박 전 대통령은 이병기 비서실장과 조윤선 정무수석을 통해 유승민을 비롯한 여당 지도부에게 “국회법 개정안을 절대 받아선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나는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2015년5월) 29일 새벽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알고 보니 당시 야당 측이 ‘이런 사안은 대통령이 잠자는 한밤중에 해치워 버려야 한다’고 제안해 여당이 그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 전개를 보고 나는 더는 유승민 원내대표와 함께 일할 수 없다고 결심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2011년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19대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이야기로 시작해 2022년 3월 대구 달성 사저로 내려오기까지의 약 10년에 걸친 이야기가 펼쳐진다.

 

박 전 대통령은 “내가 유일하게 헌정사에 탄핵으로 퇴임한 대통령이지만, 재임 시절의 이야기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옳고 그름의 판단을 넘어 있는 그대로 들려드리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의 의무감이 회고록 집필의 주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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