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흑인이란 이유로 민주당·바이든 편드는 시대는 가고 있다”

“단지 흑인이란 이유로 민주당·바이든 편드는 시대는 가고 있다”

“단지 흑인이란 이유로 민주당·바이든 편드는 시대는 가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첫 공식 대선 후보 경선 전날인 2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경선지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오렌지버그의 ‘전통적 흑인대학(HBCU)’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를 찾아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오렌지버그(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권경성 특파원

“찰스턴은 정말 멋져요. 무엇보다 역사가 보존되고 있는 곳이죠.”

2일(현지시간) 미국 남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 찰스턴. 겨울 낮 기온이 섭씨 18도까지 올랐다. 지난해 6월 개관한 황금색 벽돌의 현대식 사각 건물 ‘국제 아프리카계 미국인 박물관’은 기둥 위에 올라타 18, 19세기 아프리카에서 잡아 온 수많은 흑인 노예를 짐짝처럼 신대륙에 부려 놓던 옛 무역항 갯스덴 워프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중남부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왔다는 흑인 여성 헤이즐 카를로스(77)는 “(역사는) 성장 중”이라며 “활기차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재선을 노리는 민주당 소속 대통령 조 바이든이 “짧은 임기 동안 꽤 많은 일을 해냈다”고 칭찬했다.

정체성의 희석

찰스턴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기억하고 있는 도시다. 노예제가 빌미가 된 미국 내전 남북전쟁의 첫 포성이 1861년 울렸던 이곳의 유서 깊은 흑인 교회에서 2015년, 이번에는 백인우월주의자의 총성이 울렸고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영결식장에서 추도사를 이어가다 노래를 시작했다. 흑인 노예 무역에 가담했다 회개한 영국 사제가 신의 은총을 찬미하려 불렀다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였다. 이 도시 흑인 커뮤니티는 증오에 증오를 포개지 않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끔찍한 비극의 한 가운데에서도 품위가 빛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을 맡아 8년을 함께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후광을 입었다. 바이든 지지자인 카를로스는 “바이든이 오바마의 레거시(유산)를 잘 계승하고 있다”며 “노인 의료비를 낮추는 것은 정말 잘하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는 흑인이 많다. 주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6%를 넘는다. 미국 전체 흑인 인구는 15%가량이다.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첫 두 곳인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주에서 죽을 쒔던 바이든 대통령을 일으켜 세운 게 이들이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흑인 유권자의 64%가 그에게 표를 줬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흑인이 바이든 대통령을 떠나고 있다. 여론조사가 보여 준다. AP통신과 미국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의 조사 결과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는 흑인 성인 비율은 2021년 7월 86%에서 지난해 11, 12월 50%로 급감했다.

“단지 흑인이란 이유로 민주당·바이든 편드는 시대는 가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첫 공식 대선 후보 경선 전날인 2일 찾은 경선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국제 아프리카계 미국인 박물관’. 옛 노예 무역항인 갯스덴 워프 옆에 지어졌고, 지난해 6월 개관했다. 찰스턴(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권경성 특파원

요인이 하나는 아니겠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 민주당 프라이머리(일반 투표식 예비선거) 전날인 이날 찰스턴을 비롯한 사우스캐롤라이나 지역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얘기를 들어 봤더니 가장 두드러지는 게 세대 간 차이였다. 예상대로 현직인 바이든 대통령의 장악력은 압도적이었다. 나머지 후보인 딘 필립스 연방 하원의원(미네소타주)이나 진보 성향 작가 메리앤 윌리엄슨은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다만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이유가 달랐다. 중·장년 흑인 유권자의 경우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을 등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선택지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식이었다. 반면 청년층의 경우 관심이 적기 때문이었다. 이튿날이 투표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응답자도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나마 아는 것은 워낙 유명해서였다.

이런 격차에서 감지되는 것은 흑인 정체성 희석이다. 이날 오렌지버그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유세장에서 본보와 만난 대학생 에이시아 리(20)는 “우리 나이대에서 투표하러 나가는 흑인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며 “흑인들을 위한 투표가 적은 이유”라고 말했다. 감리교회 목사인 콘스턴스 맥러드(65)는 본보에 “흑인이 획일적이거나 단일화한 집단이 아닌 만큼 연대(solidarity)의 이유도 유색인종이라는 정체성보다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이슈인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체감되지 않는 고담준론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 당시 바이든 대통령을 도왔던 플레처 스미스 전 주 하원의원은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흑인 유권자는 기후변화 같은 추상적 개념보다 바이든 대통령이 자기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더 궁금해한다”고 말했다.

흑인이여, 돌아오라

프라이머리 하루 전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를 찾은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아니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었다. 그는 오후 4시가 좀 넘은 시간에 ‘전통적 흑인대학(HBCU)’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를 방문해 대통령 대신 유세했다. HBCU는 인종 차별을 금지한 1964년 민권법 제정 전 흑인을 위해 설립된 고등교육기관으로, 해리스 부통령도 수도 워싱턴 소재 HBCU인 하워드대 출신이다.

해리스 부통령 핵심 메시지는 투표 참여 독려였다. “올 들어 세 번째, 부통령으로서는 아홉 번째 사우스캐롤라이나 방문”이라며 “2020년 바이든 대통령과 나를 백악관 가는 길에 올려 준 게 사우스캐롤라이나였다”고 말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과 나는 여러분을 믿고 있다”며 “메시지를 보내든 문을 두드리든 어떻게든 알고 있는 모두를 투표장으로 데려가기를, 그래서 여러분 목소리를 들려 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단지 흑인이란 이유로 민주당·바이든 편드는 시대는 가고 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있는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 미국 남부에서 가장 오래된 흑인 교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1월 8일 유세를 위해 찾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전날인 2일 가 보니 개축 공사 중이었다. 찰스턴(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권경성 특파원

해리스 부통령의 흑인대학 등판은 다분히 전략적이다. 무엇보다 젊은 흑인 유권자 표심을 노렸다. 1월 8일 바이든 대통령이 흑인 유권자에 구애하려 찾았던 찰스턴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만난 전 연방정부 관료 테리 하워드(68)는 “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상당수가 대학 빚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갚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소개한 바이든 행정부 성과에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을 포함했다.

더불어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시도한 흑인 요직 기용의 정점 격이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 등 흑인 인재가 바이든 대통령 임기 초 대거 발탁됐다. 임기 중 임명한 첫 대법관도 첫 흑인 여성 대법관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이었다.

사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바이든 대통령이 딱히 공들일 이유가 적은 곳이다. 경선과 본선 모두 결과가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내 경선은 싱겁게 이길 게 뻔하고, 2020년 대선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10%포인트 넘게 졌던 본선 역시 뒤집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로 미뤄 바이든 대통령이 실제 겨냥하고 있는 것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승부가 아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민주당은 전국의 흑인 유권자에게 보낼 메시지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시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WP는 “사우스캐롤라이나를 회의적인 흑인 유권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무대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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