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에 있는 GGM 공장에서 캐스퍼를 생산하는 모습. /GGM
노·사·민·정(勞使民政) 대타협을 통한 무(無)노조, 무(無)파업 운영을 표방하며 2019년 출범한 ‘광주형 일자리’ 사업 대표 업체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 민주노총 노조가 들어선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앞으로 GGM의 임금 및 단체 협상은 민노총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장이 맡게 된다. 지난 2월 기업별 노조를 만들어 무노조 약속을 어긴 데 이어, 이번에 노조가 민노총에 가입하면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핵심 경쟁력이었던 ‘35만대 생산까진 파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깨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GGM 노조는 지난 22일 전체 조합원 만장일치로 민노총 금속노조 소속으로 조직 형태를 변경했다. 산업별 노동조합인 금속노조에는 현대차 등 400여개 기업의 19만명이 가입해 있다. 금속노조 위원장은 이 400여개 업체의 교섭권을 갖는다. 기존 GGM 임단협은 사측과 근로자 위원이 참여하는 ‘상생협의회’란 조직이 맡았지만, 올해부터 민노총이 이를 대신하는 것이다.
GGM이 만든 캐스퍼.
민노총은 곧바로 GGM을 향한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민노총 측은 이날 내부 소식지 등을 통해 “힘 있는 노조만이 투쟁과 대화를 선택할 수 있다”며 “새우는 깡이지만 고래는 밥이다. 금속노조 새우가 GGM 고래를 이길 것”이라고 했다.
GGM에 민노총 노조가 들어선 건 처우를 둘러싼 노사의 시각차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낮은 임금을 내세워 기업 투자를 유치해 지역 일자리를 늘리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낮은 3500만원가량으로 연봉이 책정되면서 실제 일하는 노동자들의 불만이 컸다. GGM 노조 측은 “민노총 등의 도움을 받아 낮은 임금과 불합리한 처우 등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GGM은 2019년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정 과제로 추진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자동차 위탁 생산 회사다. 광주시, 현대차, 산업은행 등이 출자하고 한국노총, 지역 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완성차 업계보다 적은 연봉을 받고 누적 생산 35만대까지 파업을 하지 않겠다’는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노·사·민·정 간의 신사협정이었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은 없다. 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에선 헌법이 파업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데, 이에 배치된다며 ‘광주형 일자리’ 모델 자체가 위법하다는 주장을 해왔다. 이 때문에 무파업 약속은 사실상 공허한 약속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업계에선 민노총 노조 출범이 사실상 시간문제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GGM을 낮은 임금을 통해 지역 일자리를 유치한 것이라고 자랑했지만, 처우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GGM 근로자 연봉은 3500만원가량으로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직원들 사이에선 1억원 수준인 현대·기아차 직원들의 평균 임금과 비교해 “똑같이 자동차를 만드는데,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는 불평 소리가 많았다. 광주광역시가 사택 건립 등 연 700만원 수준의 ‘사회적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한 약속도 일부만 이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600여 명이 근무하는 GGM에선 50명 이상이 퇴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용 관련 커뮤니티에선 GGM 직원들이 회사를 ‘이직을 위한 징검다리’로 묘사하고 있다. GGM 노조는 “청년이 떠나는 GGM엔 희망이 없다”며 “수당 하나 없이 시급 1만1730원, 정기 상여금도 없는 광주형 열정페이”라고 비판했다. 민노총 역시 “광주형 일자리는 실패했다”고 했다. 그러나 GGM 사측은 “GGM은 애초부터 적정 시간(주 44시간),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을 내세운 회사였다”며 “약속과 달라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현대차에 의존하는 GGM의 기형적 수익 구조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GGM은 지난해 매출액 1065억원, 영업이익 236억원으로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22.2%를 기록했다. 이는 현대차, 도요타, 테슬라보다도 2배가량 높은 수치다.
이 같은 이익이 가능한 건 현대차와 맺은 계약 때문이다. GGM 관계자는 “차량 1대를 판매하며 현대차 이득은 줄이고, GGM 이득은 늘리는 구조로 계약이 맺어졌다”고 했다. 현대차 안팎에선 GGM과의 계약을 일종의 ‘사회 공헌’이라고 언급하는 말까지 나온다. 더욱이 GGM이 만드는 경차 캐스퍼의 미래도 밝지 않다. GGM은 당초 연 7만대가량 캐스퍼 생산 목표를 세웠는데, 2021년 9월부터 지난해까지 생산량은 11만대에 불과했다. 더욱이 작년 캐스퍼 판매량은 4만5000대로 전년보다 6.2% 줄었다. 올해 캐스퍼 전기차를 만든다지만 최근 전기차 판매가 크게 둔화하면서 판매 전망 역시 밝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GGM은 최근 생산량을 늘릴 수 있도록 현대차에 추가 차량 배정을 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현대차의 노사 합의 사안이어서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민노총이 GGM에서 파업 등을 주도하게 되면 현대차 입장에선 GGM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GGM 측은 “당초 노·사·민·정 협약 취지가 위협받고 있는 건 맞지만, 민노총 측과 대화를 많이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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