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잘하고 있네. 용기에 박수를 보내네.”
개인투자자들 사이 최고의 인기종목 에코프로에 대해 꿋꿋이 과열 의견을 내며 소신발언을 이어온 A 애널리스트. 지난 21일 별세한 이종우 전 IBK투자증권 리서치 센터장이라면 A씨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종우 전 IBK투자증권 리서치 센터장이 지난 21일 별세했다.
A씨는 에코프로에 대해 현재의 주가 수준은 정당 범주를 넘어선 과열이며 매도의견을 유지한다고 말해왔다. 이에 일부 개인투자자들의 항의가 끊이질 않았는데 최근엔 물리적인 위협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9일 A씨는 출근길에 일부 개인투자자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이 투자자들은 에코프로를 비롯한 2차전지 업종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애널리스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항의를 시도하고 있다.
A씨가 받은 충격이 적잖았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의 행동이 지나쳤다고 생각되며 애널리스트들의 신변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센터장이 만약 살아 있더라면 A씨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며 꿋꿋이 자기 소신을 밀고 나아가라고 조언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센터장은 애널리스트로 일할 당시 2000년 닷컴 버블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앞두고 하락장을 정확히 경고했던 인물이다. 이에 증권가에서 대표적 ‘소신파’로 일컬어지며 ‘한국의 닥터둠’으로 불렸다.
물론 그 역시 소신발언을 할 때의 부담감과 두려움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생전 그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비관론자는 아무리 증시전망을 잘 맞춰도 결국 미움을 받는다” 등의 발언을 했다. 모두가 ‘상승’을 외칠 때 홀로 ‘하락’을 외치던 순간의 심적 부담을 토로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후배 애널리스트들에게 매도 의견을 내는 데 주저말고 소신있게 나아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문했다.
고인은 생전 “매도 의견을 내지 못하는 것은 결국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말만 하고 대세에 편승하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지만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주식을 가지고 밥을 먹는 이상 떨어질 때 떨어진다고 경고하는 게 고객을 보호하는 길이다” 등의 발언을 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 소신발언이 지니는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 대공황, 금융위기 등의 직전에도 항상 과열을 경고하는 소신파들의 발언이 없지 않았다. 이들의 목소리에 사회가 귀를 더 기울였다면 대재앙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닥터둠’이 사라져서는 안돼는 이유다.
1929년 대공황의 시작을 알린 미국 증시 폭락에 앞서 로저 밥슨(Roger Babson) 등이 “조만간 대폭락이 올 것이다”고 경고했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앞두고도 마이클 버리(Michael Burry) 등이 부동산 거품에 대해 소신발언을 한 바 있다.
따라서 이 전 센터장은 2차전지 과열 의견을 용기있게 개진하는 A씨를 ‘자랑스런 후배’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생전 자신 이후 후배들 가운데 소수라도 ‘닥터둠’의 계보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을 듯하다.
이 전 센터장 역시 2차전지 과열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생전 유튜브 등지에서 “2차전지 업종 가운데 많은 기업들이 사라질 수 있으며 항상 주가가 우상향할 수는 없고 언젠간 꺾이기 마련”이다 등의 발언을 했다.
이 전 센터장은 다른 애널리스트들에게는 일침을 놓았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에코프로에 대한 보고서는 A씨의 것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수준이다. 에코프로가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과 위상을 생각했을 때 기형적인 모습이다.
에코프로는 올해 들어 가장 큰 인기를 누린 종목이지만 증권업계 보고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애널리스트들이 개인투자자들을 두려워해 에코프로 보고서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보고서가 나오지 않는다는 건 애널리스트들이 무언의 매도 의견을 내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A씨의 봉변과 최근 공매도 금지로 앞으로 소신 있게 매도 의견을 내는 ‘닥터둠’은 더욱 나오기 힘든 환경이 됐다. 이 전 센터장은 환경을 탓하지 말고 매도 의견을 내야 한다고 말했지만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조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일부 선을 넘은 개인투자자들의 행동을 막기 위해선 금융당국이 애널리스트에 대한 물리적 위협 등에는 더욱 엄중한 형사처벌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전 센터장은 1989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대우경제연구소에서 증권가 생활을 시작했다. 대우증권, 한화투자증권, 교보증권, HMC투자증권(현 현대차증권), IM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등을 거치며 리서치 부문을 중심으로 활약했다.
고인은 지병인 간암을 앓다가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년 61세. 김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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