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고 있는 윈스턴 처칠의 모습. 처칠은 화가이기도 했다. 위키아트 제공
시인 박목월이 “빛나는 꿈의 계절”이라고 불렀던 4월이 가고 있네요. 여러분, 잘 지내셨겠지요? 조민진입니다.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4월은 다시 돌아오니까 아쉬움을 접어봅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 좋은 계절이 아무리 좋았던들 다음에도 이번과 똑같은 날들이 되풀이된다고 한다면 마냥 좋을까 하고요. 글쎄요, 저는 별로인 것 같습니다. 그냥 다르게 좋은 날들이면 좋겠습니다. 한번뿐인 생이라니 최대한 다채로운 즐거움을 누려보고 싶습니다. 같다면 반복하고 싶진 않고요.
너 I라고? E 같은데?
살면서 일인다역을 했던 윈스턴 처칠이 50대에 쓴 글들을 모아 묶은 수상록 ‘폭풍의 한가운데’를 읽으면서 스스로 다양한 행복과 행운을 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임을 알았습니다. “과연 다시 같은 삶을 살아보기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연코 ‘아니요’가 될 것”이라고 썼더군요. 힘들고 위험한 순간에 자신을 따라다녔던 행운을 보장할 수 없음을 이유로 들었지만, 근원에는 인간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이 있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반복하고 싶진 않은 거지요.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영국 총리로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던 처칠은 정치인 말고도 군인이었고, 종군기자였고, 작가였고, 웅변가였고,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다양한 자아로 살았음에도 “단 한번만”이면 충분했던 거네요.
역설적이지만, 이처럼 삶을 한번이면 충분하다고 여기면 최대한 충만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도 뒤따르는 것 같습니다. 이번 생 안에서 ‘다양한 나’를 꿈꾸게 되는 거지요. 다양한 나를 꿈꾸다 보면 ‘또 다른 나’를 찾게 됩니다. 또 다른 내가 필요한 순간은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기도 하고요.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최고의 나’를 만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양한 나를 꿈꾸기 시작하면서 최고의 나를 구하는 길이 열리게 되지요. 생각보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의 특정한 존재로 가두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나는 이건 할 수 있고, 그건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식으로요. 하지만 그러면 삶이 주는 기회들을 한껏 활용하기 어렵지 않던가요? 내가 나를 한계 짓고 구속하면 다양하고 충만한 삶을 구가하기 힘듭니다. 유일한 생을 좀 더 다채롭게 누리기 위해 저도 궁리를 많이 했습니다. 방법을 나눠볼까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엠비티아이’(MBTI) 얘기를 꺼내볼게요. 스위스 정신과 의사였던 카를 구스타프 융의 심리이론을 토대로 개발된 성격 유형 검사지요. 저는 내향형(I)으로 나옵니다. 융에 따르면 내향형은 외부 요인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이나 주관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외향형(E)은 외부 상황이나 상대에게 맞춰 자신을 조율하거나 융통성 있게 부응하는 특성을 갖지요. 오랜 기간 기자였던 저는 일하면서 외향성이 더 크게 필요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내향성이 더 높았지만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컸기에 사람들을 만나고 취재할 때면 제가 가진 외향성을 최대한 키워 임했습니다. 부단히 노력했지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선 저를 외향형으로 보고 있더라고요. 일을 더 잘하려고 노력한 끝에 얻은 이미지였지만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사람에겐 겉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다양한 특성들이 내재돼 있음을요. 영화 ‘카사블랑카’로 유명한 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에 관한 다큐멘터리(‘그녀, 잉그리드 버그만’)를 봤는데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했더군요. “나는 세상에서 제일 수줍음 많은 사람이지만 내 안의 사자는 끊임없이 으르렁댔다.” 평소엔 수줍음을 많이 탔어도 카메라 앞에선 또 다른 자신이 되어 연기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제 안에 이미 다양한 자아가 존재했기 때문이었겠지요. 아이러니하게도 한번뿐인 삶에서 오직 하나의 나로만 사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일 수도 있겠고, 세상이 많은 걸 요구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나’를 꺼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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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떤 내가 되어야 할까”
먼저 내가 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외향형과 내향형을 처음 구분했던 융은 “나는 나에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내가 되기로 선택하는 것”이라고도 규정했습니다. 처칠 전기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선 2차대전 중 차기 총리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들은 처칠이 모자를 집어 들면서 “오늘은 어떤 내가 되어야 할까?”라고 읊조립니다. 오늘은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그는 자서전 ‘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운명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 즉 이 두가지는 항상 동일하다”고 썼습니다. 운명조차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이용하길 권합니다. 나침반이 되어 선택할 방향을 알려줄 겁니다. 답을 갖고 있다면 말이지요.
선택했다면 다음으로 필요한 건 상상력입니다.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기력 향상 코치인 토드 허먼이 이른바 ‘숨은 나’를 찾는 법에 대해 쓴 ‘알터 에고 이펙트’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요, “상상력 게임을 해보자”는 조언이 나옵니다. 예컨대 많은 청중 앞에서 연설해야 해서 초조하고 떨린다면 “원더우먼이나 슈퍼맨이 되어 무대에 오른다고 상상해보자”는 겁니다. 원더우먼이나 슈퍼맨이라면 조금도 떨지 않고 자신감 넘치게 말하겠지요? 상상대로 행동하면 결국 또 다른 나로서 비범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벤치마킹할 수 있는 좋은 롤모델을 많이 알고 있다면 경쟁력이 커집니다.
다른 삶에 대한 갈망은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현생에서 실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바뀌면 됩니다. 나라는 사람을 상황에 맞게 변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자신의 다양한 잠재력을 믿고 원하는 만큼 변할 수 있다고 믿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대담성과 용기는 이런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나는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기에 꿈도 변하는 거겠지요. 내 안의 다양성을 발현하면 훨씬 자유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삶이 주는 기회와 가능성도 덩달아 커지는 셈이니까요. 자, 그럼 원하는 모습을 그리며 상상력을 발휘해봅시다. 한번뿐인 생을 후회 없이 다양하게, 기왕이면 언제나 ‘최고의 나’를 불러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작가
신문·방송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작가나 강사로 불립니다. 꿈꾸며 노력하는 여러분께 말과 글로 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아, 유튜브(‘조민진의 웨이투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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