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내내 주거비와 싸웠다, 상경 노동자 앞엔 ‘끝모를 집값 계단’

5년 내내 주거비와 싸웠다, 상경 노동자 앞엔 ‘끝모를 집값 계단’

2019년부터 서울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유정인(가명·28)씨가 지난 3일 서울역 인근의 한 높은 계단을 오르고 있다. 그는 “월급은 적은데 매달 주거비로 돈이 몇 십만원씩 빠져나가는 걸 보고 있자니, 서울에서 일하며 돈을 모은다는 건 끝없는 계단을 오르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덕훈 기자

서울에서 일하는 물리치료사 유정인(가명·28)씨는 충남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두 나왔다. 2019년 3월 한 사립대 물리치료학과를 졸업하고 상경(上京)했다. 그는 “수도권이 일거리가 훨씬 많고 물리치료와 관련한 교육·연수·인맥 등이 몰려 있어서 장기적으로 경력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5년의 서울살이는 기대보다 낮은 월급, 생각보다 높은 주거비와 싸운 나날이었다. 첫 직장 월급은 당시 최저임금 수준인 180만원. 그중 4분의 1이 넘는 50만원이 7평짜리 서울 관악구 원룸 월세로 매달 빠져나갔다. 그는 “한 달에 30만~40만원을 겨우 모으니, 집값을 생각하면 높은 계단을 한 발씩 간신히 올라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2022년 기준 국내 매출 상위 1000대 기업 중 75%가 서울·경기·인천에 있었다. 12대88의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상위 12%의 일자리 상당수가 수도권에 있다는 뜻이다. 또 수도권 지역내총생산(GRDP)은 1137조원으로 전국의 52.5%에 이른다. 이런 점 때문에 10년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유입된 20대는 약 60만명에 이른다. 청년들이 상경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에 집중된 경제 구조가 청년들이 수도권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상경한 일부는 자기 길을 개척하지만, 유정인씨 등 다수는 노동시장 88%의 하부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열악한 복지, 주거비 부담까지 3중 악재를 만난다. 당장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혼이나 출산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이중구조 안에서도 부모가 집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지에 따라 ‘청년 간 격차’가 생기는 셈이다.

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은 없다. 이런 청년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지자체도 여러 주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임대주택은 청년 수에 비해 크게 적고, 전·월세 대출이나 지원은 도움이 되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전태일재단은 저소득 청년이 초기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1인 가구 소형 주택을 더욱 적극적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장기적으로는 지역 중소기업 청년 일자리 지원 정책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12대88 사회

12대88은 국내 전체 임금 근로자의 12%인 대기업 정규직(260만명)과 나머지 88%인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1936만명)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상징한다.

〈특별취재팀〉

▷팀장=정한국 산업부 차장대우

조유미·김윤주 사회정책부 기자

김민기 스포츠부 기자

한예나 경제부 기자

양승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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